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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기자 배재록
벚꽃들의 무도회가 한창인 날,
울산 남구 무거에 있는 궁거랑 밤길을 걸었습니다.
개나리의 봄 편지를 기점으로 시샘하듯 벚꽃과 봄꽃이 벙글어서 황홀했습니다.
울산 남구의 명소인 궁거랑 벚꽃 야경을 소개합니다.
봄이 한물인데도 기습적으로 불어닥친 꽃샘추위에 벚꽃이 떨고 있었습니다.
몸은 얼어붙을지라도 기다릴 수 없다는 듯이
꽃망울이 툭툭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꽃샘바람에 탐스러운 꽃망울을 나풀거리는 춤사위가 일품이었습니다.
명민한 시를 쓸 기세로 사유를 한다.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 벚꽃의 화려함.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극한 아름다움에 시 한수를 생각해 냅니다.
무거천 산책길을 따라 길게 이어지는 벚나무 꽃길은 온통 상춘객으로 붐빕니다.
꽃이 무거운지 휘어진 가지 사이로 불빛이 반사되는 아름다움은 선경입니다.
나무 가지 등에 업혀 서로 다투듯이 벙그는 벚꽃은
어느 동양화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화려합니다.
그 무리를 지어 벙그는 벚꽃의 아름다움을 뜰채로 떠서 품고 싶어집니다.
벚나무의 겨드랑이에서 막 피어오르는 벚꽃봉오리를 사고 싶어집니다.
시끄러운 세상 풍파에 시달려 맑지 못한 내 눈에 담기는 벚꽃이 그저 멋있습니다.
불빛은 벚꽃에 덧붙어 화려한 예술품을 만들어 놓습니다.
흰 꽃의 물결이 일렁이는 궁그랑에서 나는 마음을 송두리째 벚꽃에 빼앗깁니다.
궁거랑에서 상춘을 즐기며 손을 잡고 걷는 젊은 연인의 모습이 벚꽃보다 멋있습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가설을 그들이 지금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행복감이 묻어나 내 발걸음도 덩달아 가볍게 내딛어집니다.
흔히 꽃을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일컫습니다.
열흘 인생 꽃은 봄이 되면 피지만 스스로 꽃으로 화려하게 살다가 지는 것입니다.
그 벚꽃이 내게 속삭입니다.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온갖 보화가 가득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냐고 말입니다.
한 푼 물고 가지 못하는 게 인생이니
아등바등하며 몸부림치며 살지 말라며 목울대를 울리며 열변합니다.
부드럽고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는 의미의 ‘유약승강강(柔弱勝剛强)’의 잠언을 벚꽃에서 읽습니다.
내가 강하다고 한들 유려한 꽃 앞에서는 한낱 나부랭이에 불과합니다.
벚꽃 앞에서 온갖 욕심을 부려보고 싶지만 이내 부질없음을 깨달았습니다.
길게 널어진 가지가 말한다. 욕망이 무거울수록 생은 무겁다고 말입니다.
눈길 주는 가지와 꽃망울마다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가 담긴 득음을 풀어 놓았습니다.
천사의 품속처럼 포근한 벚꽃의 품에 안겨 얼굴을 파묻고 호강을 누리고 싶었습니다.
궁거랑을 떠나오며 뒤를 돌아보니 천국이 따로 없었습니다.